일본의 '무덤 친구'와 '종활' 현상: 초고령사회가 마주한 새로운 죽음의 문화
초고령 일본, '합장묘'와 '무덤 친구'가 인기를 끌다
고령화가 심화되는 일본에서 '무덤 친구'로 불리는 새로운 관계 맺기가 주목받고 있다. 일본사회보장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도도부현별 가구 수 장래 추계에 따르면, 2050년에 혼자 사는 65세 이상 1인 가구는 108만3000가구로, 2020년 대비 46.9% 증가할 전망이다. 32개 도도부현에서 해당 가구 비율이 2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현상은 도쿄 인근 수도권과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일본에서는 '종활(終活·슈카츠)'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종활은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활동이라는 뜻으로, 자식이나 손자에게 묘소 관리를 부탁하기 어려운 현실과 유산 처리 문제 등 경제적 측면부터 생을 돌아보는 '웰 다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새로운 관계의 탄생, '하카토모(墓友)'
일본 종활 문화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무덤 친구(墓友)'다. 일본어로 '하카토모'라 불리는 이 관계는 가족묘보다 합장묘를 선택한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된다. 합장묘는 여러 유골이 합동으로 묻히는 방식으로, 개인 봉분이 아닌 공동 안치소의 개념이다. 이런 합장묘는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거나 민간에서 조직하는 경우가 있다.
주목할 만한 사례는 효고현 고령자 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서비스다. 이 협동조합은 고베시 두 곳에서 합장묘를 운영하고 있으며, 납골비용을 포함해 1인당 10만~20만엔(97~194만원)의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매년 유지비가 발생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무덤 친구 모임, 죽음을 앞둔 이들의 특별한 만남
생전에 합장묘 계약을 완료한 사람들은 '무덤 친구 교류회'에 참가할 수 있다. 이 모임은 10년 넘게 지속되어 왔으며, 연 2~3회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합장묘를 방문하는 행사를 진행한다. 사후에 함께 안치될 사람들과의 만남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인지, 참석자들은 "어차피 같이 사후에 봐야 할 사이"라는 생각으로 빠르게 친해진다고 한다.
모임 참가는 자유롭지만, 결석 시 간단한 사유를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안정감을 형성한다.
무덤 친구 관계가 제공하는 안정감
전혀 모르는 사람과 유골이 함께 안치되는 상황은 거부감을 줄 수 있지만, 무덤 친구 관계는 이러한 부담을 줄여준다. 사전에 서로 얼굴을 익히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사후에 대한 불안감이 줄어든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에는 생전에 친했던 친구들끼리 같은 무덤에 들어가기로 약속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처럼 인생 후반부를 지탱하는 관계는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생전 커뮤니티와 연결된 합장묘
합장묘는 생전 커뮤니티의 연장선에서 형성되기도 한다. 도치기현의 고령자 전용 커뮤니티에서는 입주자들을 위한 합장묘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실버타운과 유사한 이 노인 전용 생활 공간은 생활부터 장례까지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영 합장묘의 증가와 사회적 의미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듯 일본에서는 공영 합장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NHK에 따르면 도쿄도와 인근 현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에서 지난 20년간 합장묘의 신설로 매장 규모가 약 38만명 분량 늘어났다. 특히 수목장 타입의 합장묘는 38:1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공영 합장묘는 지자체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안치 권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복지 정책의 성격도 띠고 있다. 이는 사후 관리를 맡을 가족이 없는 경우 방치될 수 있는 묘지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기도 하다.
'엔딩노트'로 남은 삶을 정리하는 문화
종활 문화는 장례 준비 외에도 살아생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활동을 포함한다. 대표적인 예가 '엔딩노트'다. 일본에서는 100엔 균일가 상점인 다이소에서도 엔딩노트를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어 있다.
엔딩노트는 유언장처럼 법적 효력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 자산 상황, SNS 패스워드, 가까운 사람들의 연락처 등을 기록할 수 있어 유용하다. 특히 최근에는 반려동물 관련 정보를 기재할 수 있는 엔딩노트가 많아지고 있다. 반려동물의 이름, 나이, 보험 가입 여부, 선호하는 음식과 사료, 주로 이용하는 동물병원과 수의사 정보 등을 상세히 기록할 수 있다.
'취활(就活)'과 '종활(終活)', 다르지만 같은 인생의 과정
일본에서 '슈카츠'라는 발음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취업 활동을 뜻하는 '취활(就活)'이고, 다른 하나는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종활(終活)'이다. 동음이의어지만 완전히 다른 뜻을 가진 이 두 단어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설계하고 준비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유사한 삶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인생의 시작에 대해서는 치열하게 고민하면서도 마무리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는 현대인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일본의 종활 문화는, 인생 전체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 무덤 친구할래?…일본 고령화 시대의 대응 | 더뉴스메디칼
우리 무덤 친구할래?…일본 고령화 시대의 대응 | 더뉴스메디칼
우리 무덤 친구할래? 일본 고령층 1인 가구 급증... 2050년 108만 가구 넘어설 듯, 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일본의 '슈카츠' 문화 확산. 일본에서는 고령화 사회가 심화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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